Artist, Soungsoo Lee 이성수
milk_ priority
내게 우유를 가장 가치 있게 쓰는 방법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송아지에게 먹이는 것이라고 대답하겠다.
그리고 남는 것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뿌리거나 붓거나 하는 것이나
그 다음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사람이 마시거나 마시우는 것이겠지?
난 오늘도 우유를 마시고, 딸에게 먹이고, 우유를 그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단 한 모금도 송아지에게 먹이진 못했다.
milk baptism 112.1ⅹ145.5cm Oil on Canvas 2913
Man with milk flower vase
우유를 먹고 자란 꽃과 생각에 잠긴 남자를 함께 그리고 있다.
지나친 풍요로움에 활짝 피었다 시들어갈 이 꽃처럼
물질적 풍요와 가득한 생각에 갈 길을 잃은 한 남자는
깊은 허무 속에 사색하고 있다.
그의 모습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것은 조작된 미의 힘일 것이며,
동시에 쉽게 끝이 보이는 쾌락에 대한 인간의 모순된 동경 때문일 것이다.
Man with milk flower vase. 100F
art lover 100F oil on canvas 2012
Art Lover
예술작품을 산다는 것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잘 추측이 되지 않는
매우 독특한 만족감이다.
직접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내 입장에선
다른 작가의 작품을 사는 여유는
아직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사거나 어떤 대가로 받았던
다른 젊은 작가 친구들의
작품은 내게 매우 소중한 부분이 되었다.
만약 내게 충분한 이기심과 재정적 여유가 주어진다면
내 방을 많은 작품들로 채우고 싶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
작품들이 박물관에 놓여있을 때와
누군가의 공간에 있을 때의 감흥은 또 전혀 다른 것이다.
그 공간에서 자고 일어나며 식사를 하고 사색하며 사랑을 하는 삶은
물질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일 것이다.
Water feeding
어느 평범한 일상처럼
오늘도 난 안전하다.
조급할 것이 하나 없고,
분노할 것이 없으며,
숨쉬는 것도 지루하다.
난 눈을 감았으며 또 눈을 뜬다.
보이는 것은 나를 속인다 하였고,
보이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하였다.
평안하다. 안전하다.
평안하다. 지루하다.
난 이 치열한 평안을 위해
하루를 보낸다.
Water feeding 80F oil on canvas 2012
meta 110F oil on canvas 2013
meta
마음은 그 곳에 있습니다.
나의 영혼은 물에 빠졌고,
눈물은 강물이 되었으며,
염려는 동기가 되어
그림을 그리며 글을 쓰게 합니다.
폐허 가운데 남은 것은 사람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곳의 사람들이 더 잘 보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그 사람을 주목하는 것에서 온다면
오늘 많은 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람이 가져간 모든 것들이
쉽게 돌아올 순 없겠지만
잃어버릴 수 없는 것들로부터
새로운 일들이 시작될 것입니다.
힘내세요. 힘내세요.
힘내세요.
Apple eater에서 연상하다.
내가 그녀를 발견했을 때
그녀가 사과를 먹고 있었다고
그녀가 꼭 백설공주인건 아니다.
광대가 그녀의 뒤를 서성이고 있었다고
꼭 난장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지나가던 청년이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바라보았다고 그가 특별이
왕자일 거라고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사과로 시작된 상상의 흐름은
나로 맥락의 끝까지 달려갔다가
전속력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apple eater 60F oil on canvas 2012
꽃꽂이
난 한 번도 신의 선한 의도를 의심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원망은 스스로 자라나는 꽃과 같습니다.
오늘은 원망이 활짝 피어올라 자신의 잎에
그늘을 드리우고, 다시 시들어 갔습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마음의 흐름은 허탈한 웃음을
짓게 합니다. 그래서 꽃밭에 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꽃밭에는 꽃이 가득하였습니다.
현기증을 만드는 오후의 강한 햇살에 활짝 피어오른 꽃들은
마침 자신의 잎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해가 지도록 어느 꽃도 시들지 않았습니다.
난 당황하였습니다. 그래서 꽃밭에 뛰어들어
가장 크고 싱싱한 꽃 한 송이를 꺾어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곤 그녀를 이미 말라버린 내 원망의 시든 꽃 옆에
꽂아두었습니다.
꽃꽂이 20F oil on canvas 2011
United Plurality
나는 사자다.
나는 토끼이다.
나는 포효하는 앵무새이며
염려 많은 공작이다.
큰 염려와 작은 위대함 사이에...
언제나 진지한
나는 여럿이다.
self-portrait with sunglasses 60F oil on canvas 2013
사람_의심
날씨가 덥고 비가 오지 않는다.
어제도 차에서 내려 싸우는 운전자들을 두 번이나 보았다.
전염병 때문인지 가뭄 때문인지
모두가 서로를 경계하고 의심하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 느꼈던 안전함이 메말라가고 있는 느낌이다.
덥다.
광장은 비어있고 좁은 그늘에만 사람이 가득하다.
비가 왔으면 좋겠다.
전염병도 가뭄도 의심도
모두 씻어줄 많은 비가 왔으면…
suspecion 20P oil on canvas 2011
Fountain
오늘 나는 아이들의 놀이 속에서
장엄함을 보았다.
그들은 물을 만났고
그림자가 되었고
크게 울었고 더 크게 웃었다.
아이들은 과감했고
젖고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물은 내가 상상해본
어떤 거인보다 더 크게
서 있었고 사람을 보이게도
사라지게도 하여 이 평범한 공간을
신화의 무대가 되게 하였다.
햇살. 햇살에 대해 말하자면
오늘 그녀는 주인공이었다.
물의 춤과 아이들의 아이다움과
나의 들 뜬 기분을 안은 그녀는
시간에서 나와
내 그림 속에서 정령이 되었다.
Fountain 60F oil on canvas 2013
In the spring
봄은 오고 봄은 간다.
인생은 봄 향기를 품고
그 향기는 다시 봄이 된다.
석양이 뉘엿해지면 햇살은
향기를 지긋이 벅차게 하고
이제 성숙한 이 호흡은
대지에 퍼져 진실이 된다.
석양은 밤으로 향하겠지만
향기는 남아 가득하리라.
향기는 호흡,
내 안에 있어 실재이니,
지나가는 모든 인생의 계절에
나를 살게 하는 것은
이 향기일 것이다.
In the spring, in the sunset 80F
천로역정
먼 길을 걸어왔고,
이제 가야 할 길은
오르막입니다.
난,
"복종"에서 태어나,
"인식"을 항해하고,
"절망"의 숱한 언덕,
"열정"의 늪을 지나,
"신학"의 구조 위에,
오랜 집을 지었습니다.
신학의 구조 위에 세운
나의 집은 많은 방이 있는
견고한 성이었다 기억합니다.
손님을 위한 많은 방과 나를 위한 응접실,
나의 집은 열린 곳이었습니다.
혹, 열린 창가에 언젠가 날아든 가치의 감흥이 아니었다면,
다시는 떠나지 않았을 견고한 성, 열린 나의 집은
이젠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합니다.
복종과 인식과 절망과 열정과 신학의 견고한 구조를 지나,
퍽 오랜 방황 이후,
난 미의 산, 가치와 아름다움의 웅장함 앞에 이르러
잠시 서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나온 길은 외길, 선택이 없었습니다.
선택이 없으므로 자유도 없고,
자유가 없으므로 아무 신도 발견할 수 없는,
그 길을 난 "과정"이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날아든 가치의 감흥,
신의 생기는 나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난 가치를 따라, 신을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이 아름다움의 큰 산 앞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내 마음이 갑자기 세차게 움직입니다.
아, 이 산을 넘으면, 그 곳엔 가치의 감흥과
내 마음의 주관이 늘 말하던
바로 그 신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산은 오르막, 지나기가 쉽지 않으며,
아름다움은 높은 산이므로
이전의 모든 길보다 험한
내 마음의 역경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젠 신을 발견하며 걸을 수 있으므로
다만의 "과정"이라 하지 않고,
자유로운 "여정"이라 하겠습니다.
아름다움은 높은 산,
신에게 가는 마지막 여정입니다.
Kings 40P oil on canvas 2014
Deep throat
저자에게 보내는 경의.
난 오늘 다시 그의 말을 듣습니다.
그가 했던 어떤 말이 다시 떠올라
페이지를 뒤적이고 있습니다.
그의 말은 매우 강력해서
나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단어들은 형상이 되고
그 사이 공간들은 형상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의 글을 읽는 순간
내가 앉아있는 이 공간은
오히려 진공이 됩니다.
그리고 나의 몸의 기능은
눈과 손과 뇌만 남기고 퇴화되어
어떤 승화가 진행됩니다.
가장 원시적인 이 가상의 경험이 주는 마법이 위대한 것은
글을 읽는 동안 어떤 타자가 지어낸 그 내용이
너무 쉽게 마치 진실처럼 내게 받아들여져
나의 세계를 다시 조금씩 수정해간다는 사실입니다.
글을 쓴 그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세계를 만들어낸 창조자이며,
그것을 강요하는 독재자이나,
또한 대체할 수 없는 영웅입니다.
deep throat 60F oil on canvas 2012
My love, my savior
그녀의 아름다움은
그녀가 얼마나
그를 필요로 하는지에 있습니다.
그의 아름다움은
그가 얼마나
그녀의 필요를 필요로 하는가에 있습니다.
그녀는 그가
그녀의 필요를
필요로 하는 것이 필요했고
그렇게 그들은 서로 만났습니다.
필요는 영원하지 않고
아름다움도 함께 시들었으나
그는 여전히 그녀의
구원자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구원자입니다.
My love my savior 50F oil on canvas 2011
My love, my savior
그녀의 아름다움은
그녀가 얼마나
그를 필요로 하는지에 있습니다.
그의 아름다움은
그가 얼마나
그녀의 필요를 필요로 하는가에 있습니다.
그녀는 그가
그녀의 필요를
필요로 하는 것이 필요했고
그렇게 그들은 서로 만났습니다.
필요는 영원하지 않고
아름다움도 함께 시들었으나
그는 여전히 그녀의
구원자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구원자입니다.
My love my savior 50F oil on canvas 2011
sleep in magic 20F oil on canvas 2011
Sleep in magic
꽃은 최소한의 표현입니다.
내가 그 한 송이 한 송이 꽃을 꺾을 때 함께 꺾었던
내 일반적 호기심과 동물의 마음을 보셨다면,
꽃은 그저 내 사랑의 작은 상징의 부분이었을 뿐임을
아셨을 것입니다.
꽃과 함께 나는 내 마음의 욕심을 꺾고
꽃과 함께 난 내 아름다움을
그대에게 드렸습니다.
사랑은 상징으로 거대해집니다.
그러나 상징은 오히려 비밀처럼
본질을 쉽게 위험에 빠뜨립니다.
꽃을 드리는 제 마음이 그렇듯 두 갈래이었습니다.
그것은 꽃이 내 마음을 가두어 버리고 제한하여
그대에 대한 내 사랑을 한계 지을까 하는 두려움과
그래도 모든 것을 죽여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 이 꽃처럼
내 마음의 모양과 닮은 선물은 없을 것이라는 안도감입니다.
중독
한 번을 경험하였다.
그리곤 생활이 되었다.
난 깊은 중독에 살고 있다.
난 신성하였고 하늘에 속했다.
그리곤 인간이 되었다. 자연이 되었다.
중독은 파괴되려는 의지였다.
그것은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는 암살자의 단도이며
언젠가 시작한 긴 소설의 마지막 장, 그 첫 페이지였다.
난 이제 처음을 회고한다. 그리곤 하품을 한다.
격정적인 순간의 짧은 무료함에서
신의 자비를 찾으며
다시는 내일을 계획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래, 그렇게 되는 거다. 어차피 그렇게 흘러가는 거다.
애초에 내 중독을 고해하지 말았어야 했다.
Mirror, mirror 40F oil on canvas 2011
three guirdians 20F oil on canvas 2011
반복
반복은 시간입니다.
반복은 시간입니다.
반복은 공간입니다.
반복은 공간입니다.
반복은 객관입니다.
반복은 객관입니다.
반복은 주관입니다.
반복은 주관입니다.
반복은 믿음입니다.
반복은 믿음입니다.
반복은 선언입니다.
반복은 선언입니다.
반복은 편협합니다.
반복은 편협합니다.
반복은 중립입니다.
반복은 중립입니다.
반복은 잉여입니다.
반복은 잉여입니다.
반복은 유희입니다.
반복은 유희입니다.
반복은 심리입니다.
반복은 심리입니다.
반복은 일상입니다.
반복은 일상입니다.
반복은 최면입니다.
반복은 최면입니다.
반복은 종교입니다.
반복은 종교입니다.
반복에 관하여 말하였습니다.
광대
내 인생이 시라기 보다
희극이라면
내 삶의 배경엔 빠른 템포의
클라리넷 굉음이 흐르고
내 눈물에 눈물 흘릴 사람
하나 없으리라.
난 맞지 않는 큰 옷에 시름하여
넘어지고 뒤뚱거리다
지나가는 이의 옷이라도
찢어내고는 진땀을 흘리며
활짝 웃어보겠다.
내 슬픔이 깊을 수록
내 외로움이 진할 수록
내 인생의 관객들은 더 많은
웃음으로 그들의 초라함을
잊어가리니,
난 애써라도 눈물과
절망을 연기하며 빠른
템포로 사람들의 옷을 찢어가겠다.
내 삶이 ‘시’라기보다 ‘희극’이라면
이제 난 ‘광대’, 나를 위해 살기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살아가겠다.
광대에게 웃음과 비웃음은 그리 다르지 않으므로
어디서 흘러오는 웃음의 비릿한 향기가
내 마음을 웃게 하겠다.
hopping 100F oil on canvas 2011
광대
내 인생이 시라기 보다
희극이라면
내 삶의 배경엔 빠른 템포의
클라리넷 굉음이 흐르고
내 눈물에 눈물 흘릴 사람
하나 없으리라.
난 맞지 않는 큰 옷에 시름하여
넘어지고 뒤뚱거리다
지나가는 이의 옷이라도
찢어내고는 진땀을 흘리며
활짝 웃어보겠다.
내 슬픔이 깊을 수록
내 외로움이 진할 수록
내 인생의 관객들은 더 많은
웃음으로 그들의 초라함을
잊어가리니,
난 애써라도 눈물과
절망을 연기하며 빠른
템포로 사람들의 옷을 찢어가겠다.
내 삶이 ‘시’라기보다 ‘희극’이라면
이제 난 ‘광대’, 나를 위해 살기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살아가겠다.
광대에게 웃음과 비웃음은 그리 다르지 않으므로
어디서 흘러오는 웃음의 비릿한 향기가
내 마음을 웃게 하겠다.
hopping 100F oil on canvas 2011
선원
배와 함께 움직이기 위해
선원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큰 배를 움직이는 것은
매우 복잡한 힘의 작용이라 했습니다.
부력과 마찰력과 풍력과 운동,
운동력과 정력과 권력과 중력,
원심력과 구심력과 작용, 반작용...
그러나,
이제 나의 발언은 새로우니,
큰 배를 움직이는 것은
'시'라 하겠습니다.
두터운 소금물의 지지와, 습하고 비린 바람과, 지향,
미지를 염두한 지향과, 연속성의 의지와, 현시욕의 현현과, 상상력,
지배욕과 압제하의 자유, 떠남과 남겨짐의 '시'가
배를 움직이게 합니다.
큰 배는, 단 한 번도, 시와 상관없이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나의 생각에, 시를 움직이는 이는 시인이니,
큰 배를 움직이는 것은 시인, 결국 몇 명의 시인들이라 함이 옳겠습니다.
rescue 100F oil on canvas 2011
날이 밝다.
아침은 잠들어 있던 자들에게만
영광이다.
밤새 영광을 찾던 자들에게
오르는 해, 파란 잉크 같은
새벽의 하늘은 어둠이 빛을
두려워하듯 수치스러운 진동이다.
난 모든 인공의 빛을 사랑한다.
‘날 모욕하지 마세요.’
충혈된 내 피부에 햇살이 닿는다.
그 때, 난 모든 인공의 빛을 사랑한다.
난 형광과 백열등, 할로겐을 즐기며
심지어 가스 불빛을 견뎌낼 수 있다.
내게 이제 세상의 날은 ‘밤’뿐이다.
sleep dead 20P oil on canvas 2011
광대
내 인생이 시라기 보다
희극이라면
내 삶의 배경엔 빠른 템포의
클라리넷 굉음이 흐르고
내 눈물에 눈물 흘릴 사람
하나 없으리라.
난 맞지 않는 큰 옷에 시름하여
넘어지고 뒤뚱거리다
지나가는 이의 옷이라도
찢어내고는 진땀을 흘리며
활짝 웃어보겠다.
내 슬픔이 깊을 수록
내 외로움이 진할 수록
내 인생의 관객들은 더 많은
웃음으로 그들의 초라함을
잊어가리니,
난 애써라도 눈물과
절망을 연기하며 빠른
템포로 사람들의 옷을 찢어가겠다.
내 삶이 ‘시’라기보다 ‘희극’이라면
이제 난 ‘광대’, 나를 위해 살기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살아가겠다.
광대에게 웃음과 비웃음은 그리 다르지 않으므로
어디서 흘러오는 웃음의 비릿한 향기가
내 마음을 웃게 하겠다.
hopping 100F oil on canvas 2011
by the sleeping golden lady 100F oil on canvas 2011
슬픔의 시
마음에서 거대해진 한 사랑의 폐해에 대하여
진심으로 부르는 후회의 노래와 장송곡...
내 마음은 벌써 세 번 울었습니다.
탄생은 없었습니다.
그저 존재하지도 않았던 모호함이 커져,
사랑이라는 이름도 부여 받지 못할
순결한 안개와 짙은 한숨 같은
나의 마음, 한 사랑의 모사(模寫)가
이젠 흩어져 갔습니다.
신과 나와 내 마음의 사랑을 닮은 한 사람의 증언으로
이 거짓된, 순결한, 마음의 거대함은
사망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시절의 설레임은 무거운 마음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 시절의 기대는 다만 좌절함의 연습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 시절의 그 사람은 거룩한 환영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 시절, 그 시절은... 내 돌이키지 않겠다 하겠습니다.
존재하지 않았으며,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그 시절, 그 마음이 내게도 무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모든 슬픔의 탄식을 하였습니다.
그 후에 남은 것은 더러운 주검과 구차한 고독...
살아서는 존재하지 않던 것이 죽어서는 주검을 남겼습니다.
돌아보면
돌아보면 나를 좇던 거친 숨소리,
낡은 비수는 꽃잎이 되어
세상과 기억과 한 필치
흥분의 무덤을 덮고
넘어질 듯 위태로운
내 발걸음의 걸음을 멈추려 한다.
돌아보면 않된다. 결코 돌아보면 않된다.
거듭되는 마음의 외침은 내 성실함의 증언이요,
언젠가 어디선가 소금이 되어버린 한 아름답고 미련한
여인의 전설의 묵상이리라.
난 늘 달려간다. 달려야 한다.
가속도는 거룩한 칼빈의 성서적이며 자학적인
신학의 근거일 뿐 아니라, 차라리 악용되어도 좋을
날 선 낫이기 때문이다.
이제 겨울, 곧 수확의 계절이 오면
더 많은 수확을 위하여 난 돌아보지 않고 달려
낫을 갈고 산 비탈을 내려가
처음 만나는 열매를 수확하여야 하겠다.
runaway priest 10F oil on canvas 2011
꽃밭에서 길을 잃다.
떠나 보자. 돌아올 수 있을 만큼만.
끈을 매고 창 밖으로 뛰어내리듯
나의 여행은 부활을 전제한 삶의 포기이다.
그래서 난 이제 자유롭다.
긴장을 버리고 철학을 버리고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되어보자.
그러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은
활짝 핀 꽃밭이다.
꽃밭에서 난 꽃밭에
집을 짓지 않아도 되는 만큼
머무르겠다.
내가 꽃의 요정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동안만.
내가 꽃잎이 떨어짐에 비명을
지를 수 있는 동안만.
그리고 난 향기를 입고 돌아와
40일의 긴 삶을 살아가리라.
lost in flowers 100F oil on canvas 2009
침상의 상념.
뇌가 가렵다.
아무리 끍어 봐도 미치지 못할
그 두꺼운 뼈 속 깊은 곳엔
작은 벌레가 살고 있다.
아무리 사정하고 애원하여도
사라지지 않는 이 녀석은
애초에 어떻게 내 인지의 가장 깊숙한 내부까지
스밀 수 있었을까?
자고 있는 동안이었을 것이다.
내가 자고 있어서
미처 바르게 느끼지 못하는 동안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스며들었을 것이다.
늘 더러운 음모는 내가 자고 있을 때 시작된다.
그래서 내가 자려 할 때마다 뇌는 계산을 시작하고,
내가 음모를 꾸미려 할 때마다 뇌는 휴식을 청하는 것이다.
벌레가 스며들 수 있는 뇌엔 배설구도 있었으면 좋겠다.
awaken 100F oil on canvas 2009
여인의 거절에 대하여.
여인은 늘 거절합니다.
남자는 늘 제안합니다.
어떤 여인은 제안하기도 전에 거절합니다.
어떤 남자는 제안하지 않는 것으로 여인의 거절을 거절합니다.
여인은 거절하여야 합니다.
거절하지 않는 여인은
진실한 제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제안하여야 합니다.
남자의 거듭된 제안이 아니면
여인들은 그 자신을 아름답게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계속된 제안과, 계속된 거절,
그리고 여인은 단 한 번의 승낙을 베풉니다.
이젠, 여인의 아름다움이 지켜졌습니다.
남자의 남자다움도 발견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위해,
남자는 제안하기를 두려워 말아야 하고,
여인은 거절함을 망설이지 말아야 합니다.
풀밭의 독서모임 60F oil on canvas 2009
writing in the warfield 60F oil on canvas 2011
Romantic poem
결국의 나는, 그대 안에 발견됩니다.
감흥과 영감이 사라진 다음,
그 후로도 진실은 없었습니다.
절박한 만남과 실존의 춤사위,
춤사위... 가장 필연적인 춤사위,
춤사위... 그 이후에 내가 깨달은
한 명제는,
'나의 희망이 내 존재를 증거한다.'
이었습니다.
희망이 나의 실재입니다.
욕구가 나의 필연입니다.
주관이 나의 범주입니다.
믿음이 나의 체계입니다.
그리고 내가 알게 된 진실은
나의 모든 희망은 그대를 웃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제서야 태양은 구름을 쪼개고,
새는 경쾌해지며, 산에는 불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대는 내게 웃음을 주었습니다.
그대가 아파하면, 나의 모든 욕구는 그대를 대신하는 것이며,
나의 몸은 거창한 통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면 난 조금씩 그대의 웃음을 발견하겠지요.
그대가 웃으면, 세상은 정지한 object, 그것으로 완전합니다.
그대의 어느 것도 나에게 소중하므로,
그대는 영원같이 정직한 나의 세계입니다.
나는 내 안에 있고, 내 밖의 나는 내 욕구 속에 있으며,
내 욕구는 그대를 희망함에 있으니,
그대보다 더 큰 범주는 없겠습니다.
내게는 아마도 없겠습니다.
결국의 나는 그대 안에 발견됩니다.
사자에게 다가가며. 60P oil on canvas 2013
사자에게 다가가며
어딜 가십니까?
사자에게 복음을 전하러 갑니다.
두렵지 않으십니까?
두렵지 않습니다.
사자가 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슴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제 발걸음이 사뿐하기 때문입니다.
사자를 깨우실 겁니까?
그렇게 되겠지요.
두렵지 않습니까?
두렵지 않습니다.
내게 전하고 죽을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슴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내 발걸음은 견고하기 때문입니다.
사자에게 구원이 있습니까?
사슴에게 구원이 있다면
사자에게도 있겠지요.
사슴에게 영혼이 있습니까?
어젠 있는 거 같았지만 오늘은 모르겠습니다.
두려울 때가 있습니까?
네. 늘 두렵습니다.
지혜를 구하려 동전을 던지다. 220*260cm oil on canvas 2016
나, mundane, sign, 호흡, 해석, 노래 220*260cm oil on canvas 2016
권태 상황 .
춤 출 이유가 없다.
노래할 이유가 없다.
생각할 이유가 없다.
움직일 이유가 없다.
난 모든 것을 경험하기 원하였으며,
영원히 존재하기를 구하였으나,
인생을 통찰함이 나에게 가져다 준 것은
다만의 허무와 무기력함이었다.
이제 내가 다시 해야할 일은
통찰 행위에 대한 실존적 반성이리라.
통찰을 반성한 후 나의 생각.
행위가 시작될 때,
이미 결론지어져버릴
나의 영원한 순간은
감사하게도
그저 춤출 이유와
그저 노래할 이유와
그저 움직일 이유는 주었지만
아무 기억과 생각할 여유는
건네지 못하였구나.
나의 실존, 나의 현실은
비극적인 내 과거와 닮아 있다.
생각할 이유를 찾기 위해
나의 마지막 생각의 가능성인
통찰을 통찰하기로 한다.
통찰에 관한 통찰.
거룩한 이 자기 반성은
실재로는 늘 '가장 큰 범주'를 벗어나야 가능하겠으나,
어찌 인간이 신의 범주를 벗어나랴.
바로 이것이 인간 통찰의 한계인 것이다.
생각을 위해 이제 난 통찰을 넘어 신을 찾는다.
신의 범주는 신의 기호와 그의 절대 선호이니,
통찰의 결과 생겨나는 생각의 한계는
신에 대한 반역이리라고 난 이제 공교롭게 선택한다.
반역의 경계선 밖에서 순종을 가늠하며 늘 순종에 충성하되
그 영역을 넓혀감이 내 모든 힘이 되리라.
신의 선호.
춤추고, 노래하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이 모든 것을 하게 하는 이 가능성이,
신의 섭리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어떠한 춤, 어떠한 노래, 어떠한 생각과 어떠한 움직임이
신의 선호 안에서 아름다운지에 대한
영원한 가치 매김은
현재라고 불리 우는
퍽 오랜 미래에
신에 대한 순종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지리라함을 아는 것이 지혜로우니,
이 앎, 신에 대한 지식은
내가 찾은 춤과 노래와 생각과 행위로 만들어지는
삶의 지속적인 이유가 되어 주며,
신으로 나를 알게 하리라.